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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05 결국 황교수의 잘못은 연구원 난자를 사용했다는 것 뿐.
각박한 세상
살기가 너무 힘든 시기다.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와의 괴리는 너무 커져만 가고
경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역사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빈곤이 퍼지면
항상 사회가 뒤집어졌는데..
위기다 위기.
우리의 희년은 언제쯤 선포될 것인가.
아직도 풀지못한 숙제
사람은 누구나 하루 24시간을 살아간다.
하지만 누구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이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엘리베이터를 오르면서 들었던 생각.
아침9시에 출근을 하기위에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사람.(A라 하자)
그 사람에게 오늘 하루 남아있는 시간은 15시간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5분이라 잡으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간 시점에서
그 사람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14시간 55분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B라 하자)은 성격이 급해서 계단으로 뛰어올라간다.
계단으로 올라간 사람은 숨이 가빠 헉헉거리고는 있지만,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동안 걸린 시간은 3분이다.
2층으로 올라간 시점에서 B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14시간 57분.
자신의 에너지(체력)을 소모해서 시간을 당겨쓴 것이라 할수 있지 않나???
이것도 상대성이론이라 볼수 있을까???
10년이 지나도 모르겠다.
신사참배
올해도 어김없이 9월이 다가왔다.
1938년 9월 9일. 한국기독교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의한 날.
매년 이와 관련된 글들을 쓰고, 이야기를 나눠왔으나, 크게 달라지는 모습이나 눈에 띌만한 움직임은 없다.
오히려 점점더 꺼려하는 사람들. 무겁다, 어렵다...는 반응들.
언제까지 즐거움만을 추구할것인지...
세상은 점점 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변해가고, 어느순간에는 우리 모두는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시점에 서게 될텐데,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아니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는 사람들조차 너무나 희미하다.
먼 옛날의 일이라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언제까지 그렇게 덮어두고 살 것인지.
현재 미국에는 “혐오범죄 방지법”이라는 것이 상원을 통과하여 대통령의 사인만 남겨두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을 금지하는, 상당히 “좋은 취지”의 법안이다. 그래서, 앞으로 교회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를 비판하는 발언을 할 수가 없다. 또한 미국 내에서 사회적 소수인 타종교인들을 위해서, 사도행전4장 12절을 언급할 수도 없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 말씀을 언급할 수도 없다.
앞으로 동성애자가 자신들의 결혼을 위해 목사님에게 가서 주례를 부탁할 경우 목사님은 그것을 거절할 수 없다.
거절할 경우? 법정에 서게된다. 소송에 지면 감옥행이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위와같은 일들이 우리나라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있겠는가?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런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할 수있는 핍박이 없음에 한탄해야하는가?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가 알건 알지 못하건간에 결단을 해야한다.
그런 결단의 시간들을 거치다 보면, 최종적으로는 666의 표를 받을 것인지 말것인지를 결단하는 최종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되겠지.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미네르바
미네르바 사태에 대한 나의 단상.
1. 그의 글을 봤다. 좀 횡설수설 써서 무슨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2. 그 글의 밑에 달린 수 많은 리플들...메일로 보내달라는 이야기들.
한심했다. 클릭질 몇번이면 들어올 수 있는 정보들 조차 편하게 메일로 받고 싶어하는 공짜 심리.
평생 남의 장단에 놀아나며 투자할 사람들.(보통 이런 사람들이 남 탓은 제일 많이 하더라.)
3. 미네르바의 예측이 몇개 맞았다고 그의 모든 예측이 맞는다고 믿는 것은 무리.
물론 계속 맞춰가면 확률은 높겠지만, 최소한의 자가 검증은 필요하지 않을까?
최소한 그가 항상 말했던 블룸버그 통신과, 한국은행 및 기타 금융당국에서 발표하는 통계자료를
이해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저축이나 하는게 낫지 않은가?
4. 타인의 경제 예측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말한 "용병"과 같다.
전투기술은 우수하나 충성심이 없기 때문에 생사를 건 전쟁에는 적합하지 않다.
전쟁에 이겼을 경우 용병은 처음보다 더 많은 댓가를 요구하기 마련이고
용병을 고용한 국가에서는 이들을 통제할 무력이 여전히 없다.
전쟁에서 졌을 경우 용병은 간단히 도망치거나 적국에 항복하면 그만이다.
5. 어찌됐건 미네르바의 예측을 나는 정확하지 않다고 본다. 맞춘건 한두개에 불과하다. 틀린 것도 많다.
다만 가진자들에 대해 과격하게 발언하면서 한두개 맞췄으므로 인기를 끌었을 뿐.
어차피 익명에 기댄 예측을 나는 믿지 않는다. 증권가 찌라시도 그정도 적중률은 보인다.
틀린게 더 많아서 그렇지.
6. 그래도 미네르바가 잡혔다고 이야기를 듣고, 그의 신분이 30세, 무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나는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에서 읽은 "길삼봉"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열어보기
경제가 어려운 이유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교회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
로마시대에 기독교는 마침내 로마의 국교가 되었었다.
당시 로마가 지배하던 지역은
아프리카 북부,
유럽,
중동아시아까지였다.
더이상 핍박과 탄압의 공포에서 벗어난 교회는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신학적인 연구의 깊이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날로 번성했지만
그 대신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했다.
당시 로마 귀족들이던 지주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시던 예수님은 거부했다.
그리고 그 가난한 사람들의 피눈물 속에 이슬람이 들어왔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지주들의 목에 돌을 매달아 바다로 쳐넣고
유래를 찾아볼수 없을만큼 빠른 속도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만다.
이것이 현재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이슬람화 된 이유다.
(물론 이 사실을 세계사에서 가르치지는 않는다.)
한편 세상 권력과 손잡은 로마 카톨릭이
성상 숭배(예수님, 성모 마리아, 여러 성자들의 동상을 숭배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에 반대한
일부 교회지도자들은 핍박이 심해지자 알프스를 넘어 북으로 북으로 쫒겨갔다.
결국 추운 얼음의 나라 러시아에까지 쫓겨간 사람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번성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축복을 가난한 농노들에게 나누기 보다는 귀족들과 어울리기를 즐겨했다.
그리고 그 가난한 농노들 사이로 공산주의가 들어왔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당시 러시아정교회 사제들이 먹던 식기는 금과 은으로 되어있었고
그들이 머물던 성당 문손잡이는 순금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세계사시간에 가르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 이것은 명백하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것이 이슬람이건, 공산주의건.
더 큰 불행은 이 같은 사실을 더이상 세계사 시간에 가르치지 않을 뿐더러
현대교회에서 조차 이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누차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은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 이자, "가난한 자의 하나님이다."
가난한 노동자에게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께서는 준엄히 경고하신다.
(신명기 24장 15절 참조)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예레미야서 22장 13절)
이제 경제가 위기의 순간으로 치닫고 있다..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사이에 보였던 돈의 흐름이
2차세계대전과 아마겟돈 사이에 놓여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보이고 있다.
막대한 자금이 한곳으로 몰리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전 세계의 막대한 자금이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아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는데
미국의 부채는 어디서 생긴 것이란 말인가?
미국이 빚지고 있는 나라(혹은 단체)는 어디이길래...
덩달아 미국에 빚지고 있는 우리 같은 나라마저 휘청이고 있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경기가 안좋으면 무너져버릴 가난한 사람들이 셀수없이 많은 지금
이 추운겨울에 그들이 먹고 입고 잠잘 곳이 어디란 말인가?
그들이 교회말고 어디를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의 교회들은 그들에게 잠긴 곳간문을 열 준비가 되어있는가?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게 주시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이 기회마저 날려버리고, 지금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가진자의 편에 서게 된다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교회에게 임할 것이다.
오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봉인 해제
얼마전에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서 분노한 상황속에 마구 쓴 글이 있습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좀 수정하여서 공개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회개에 합당한 열매
몇일 전 인터넷 뉴스에서 쇼킹한 소식을 하나 접했습니다.
그것은 서슬퍼런 독재정권 치하에서 전기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전직 경관 이근안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이라는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목사된 이근안 “교정선교활동하며 살겠다
문득 영화 "밀양"의 유괴살인범이 떠오릅니다.
믿음과 회개...에 대해서 좀 오랫동안 묵상을 하고 있는데요...
복음서에서 나오는 "전도"의 시작은 언제나 회개의 메세지였습니다.
세례요한이 계속해서 강조했던 메세지는
"너희들 속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돌맹이를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에 태울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세례요한한테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리이까?"
"옷 두벌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먹을것도 그렇게 하라."
세리들에게는,
"정한 세금 이외에는 더 걷지 말라."
로마 군인들에게는
"남들을 괴롭히지 말고, 받은 월급만 가지고 생할해라."
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구원이 값없이 얻는 은혜라 할지라도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되더라도
회개에는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리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하자마자 자신이 악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의 네배를 자발적으로 갚습니다.
후.....
고린도후서 7장에도 참된 회개가 어떤 것인지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물론....7년의 복역기간과, 그 이후의 시간동안 그사람이 어떤 회개를 하고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겠지만..
진정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을 용서하시고 사용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고
지금 목사안수를 받는 이근안씨의 하나님이 맞다면,
이근안씨에게도 사도 바울이 겪은 고난에 대해 갑절에 갑절의 고난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사도행전 9장 13~16)
사도 바울이 겪은 고난
내가 정신 없는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자매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5~27 표준새번역)
멜라닌 파동 촛불집회는 왜 안하지?
지금 멜라닌을 먹은지 몇년이 지났는지도 모르는 이 상황속에서 다 어디갔나?
우리나라 해경이 중국선원에 삽으로 맞아죽었는데도 왜 아무도 중국대사관앞으로 안가지?
자발적인 참여?
ㅋㅋㅋㅋㅋㅋ
인류 역사상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정치 운동이 있었나?
중요한건 그게 "어느 나라"와 관련이 되었냐는거지...
오피니언 리더
간만에 포스팅.
그것도 신앙에 관한 것이 아닌, 세상에 관한 ...ㅋ
인터넷을 보면 온통 미친소 이야기로 들썩인다.
정신이 없다. 마치 예전에 황우석사건과 비슷해보인다.
블로고스피어라고...말은 그럴듯 하다만,
글을 쓰는 것은 어느정도 "재능"에 기반한 것이라고 믿기에
블로고스피어라는 공간에서 이슈화를 시키고, 이슈를 쟁점화시키고,
의견을 끌어가는,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어느 집단이나 마찬가지.
나머지 블로거들은 그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고, 그들이 제시한 논거위에 자신들의 의견을 쌓아가게 된다.
"오피니언 리드"는 그만큼 쉬운일이 아니고, 상당한 재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이번 광우병 사건이 이토록 쟁점화가 되었다는 것은 그런 오피니언 리더들의 상당수가 일관적인 메세지를 내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게 황우석이건, 북핵이건, BBK건, 광우병이건 마찬가지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점이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일관적인 메세지를 보내면, 대중은 당연히 그게 반응하고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메세지를 나름대로 재구성하고 보완해서 그들의 메세지는 콘텐츠가 되어 확산된다.
문제는 그 메세지가 과연 정확하고 객관적이냐는 것이다..
인간광우병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우리나라도 소 뼈로 만든 사료를 대량 수입해서 한우에게 먹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에 걷지 못하는 소가 나타났다고 하고,,
광우병의 잠복기가 8년이라고 볼때 올해 안에 광우병 환자가 발생하지 않을까.?
의료보험 민영화도 그렇고, 소고기 수입도 그렇고..
노무현대통령때 시작한건데 왜들 난리인지..
그때엔 한나라당이 똑같은 논리로 반대를 했지.
왜냐? 야당이었거든.
예나 지금이나 국회의원들은 언제나 정치적...
국민을 위한 지도자는 진정 없는 것인가...?
뭐, 원래부터 없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했을 때,
교육 3불정책을 통해 학생들이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란 동영상을 만들었을때,
신정아게이트 사건이 터졌을때
오피니언 리더들은 왜 그리도 잠잠하였을까?
스파이더맨. 크리스챤이 살아가야 할 길.
부제: 스파이더맨과 크리스챤의 공통점
1. 신분의 변화 전에는 둘다 찌질이다.
2. 값없이 주어진 은혜
스파이더맨 : 본인이 의도하지도 않은 상황속에서 거미에 물리다.
크리스챤 :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이 믿음을 허락하신다.
3. 책임
스파이더맨 1부의 주제 :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것은 깨어있는 크리스챤에게 부과된 의무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을 흘려보내는 것. 이 세상의 악에 맞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나가는것.
그러나 만일 그 파수꾼이, 적군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서도 나팔을 불지 않아서, 그 백성이 경고를 받지 못하고, 적군이 이르러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을 덮쳤다면, 죽은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은 내가 파수꾼에게 묻겠다.
너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하여라. (에스겔 33장 6~7절, 표준새번역)
4. 하지만 특권은 없다.
스파이더맨 2부의 주제 : 영웅의 일을 한다고 해서 밥이 생기거나 떡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웅 짓거리를 하고 다니느라 일자리에서 해고되고, 학점은 빵구가 나며, 애인과 사이가 멀어진다.
크리스챤 : 일상의 삶속에서 남들과 똑같이 일하면서, 기도해야할 건 산더미인데다가 말씀 묵상과 경건, 그리고 선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면서 더 힘들어진다.
5. 교만
스파이더맨 3부에서 스파이더맨은 어느덧 자신을 우상시하는 사람들에 파묻혀 교만해진다.
크리스챤 : 기도좀 하고 경건생활좀 해서, 어느덧 영빨이 좀 생기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교만의 함정에 빠진다.
6. 자유의지
스파이더맨 3부의 주제 :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힘을 얻은자에겐 두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 선을 행할 기회와 악을 행할 기회. 선택은 자신의 몫이며, 그 결과도 자신의 몫
크리스챤 : 우리는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 뜻에 순종할 수도 불순종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선택은 자신의 몫이며, 그 결과도 자신의 몫.
7. 유혹
6번의 선택이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파이더맨에게는 그 새까만 거머리가 붙고 난 뒤,"더 강한 힘"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 힘은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힘이었고, 연단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 "속성으로", "댓가를 치르지 않고", "쉽게" 얻은 힘이었다.
처음에는 그 힘으로 여전히 "선한 일"을 한다. 하지만 그 마음의 동기는 어떠한가?
조금 있다가 그는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일도 가끔씩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그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의 아픔보다 나 자신의 자존심에 난 작은 상처에 분노하게 된다.
그렇게 하다가 악의 길로 떨어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주받을 북한 정권
가슴이 무너진다.
물론 나는 어떤 글을 보면 그 글이 진실인지 꾸며낸 이야기인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위 글은 사실은 아닌 것 처럼 보인다.
일단 문장이 너무 깔끔하고, 적당히 읽는 이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테크닉이 보인다. 탈북자의 개인 체험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많다.
하지만.
위 글은 실체다.
하루에 일어난 일은 아닐지라도, 어느 한 사람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닐지라도 위 상황은 현재 북한의 상황이라고 확신한다..
저주받을 북한정권..그리고 그의 수괴 김정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 내었도다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 장사같이 맹렬히 던지되
정녕히 너를 말아 싸서 공같이 광막한 지경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 있으리라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고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집의 아비가 될 것이며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이사야 22장 15~22)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되었으니 너는 그 말씀대로 될찌어다~!
북한의 실상을 알기 원한다면 다큐멘터리 PD 김중기형제의 블로그에 가서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E.T 할아버지 별세.
불길 헤치고 불꽃처럼 살다간 ‘ET할아버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기가 어디야, 아름답구먼. 나 이제 급히 감세.”
당신이 바라본 그 천국을, 나 역시 죽을 때 바라보기 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목음 5:20)
순종
앞으로 삶의 남은 길을 예수님처럼 지극히 낮은 곳으로 향하기로 결단한 글에 소개한 것과 같이 요즘에는 요셉일기에 종종 들어가본다.
예전의 글과 사진들도 보면서, 몸과 마음이 너무 평안에 찌들어서 미쳐 돌아보지 못한 낮은 곳의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불현듯, 요셉일기의 오른편에 있는 두개의 선교사 사역 소개 배너를 보게 되었다.
하나는 몽골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용규, 최주현 선교사의 배너,
다른 하나는 카자흐스탄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재성선교사의 배너.
요즘 선교사에 대한 후원에 대해서 작은 부담감이 있어서 하나씩 들어가봤다.
'아, 몽골은 이렇군.' 하고 다시 다음 카자흐스탄의 한재성 선교사..
가만, 한재성? 한재성?
......한재성!!!
얼마전에 읽은 팔복 2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서 나온 그 선교사가 아닌가?
사랑하는 아내가 카자흐스탄의 괴한들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고 울며 애통해하며,
다시 카자흐스탄을 섬기기 위해 떠나는 그 선교사......
(잠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요셉일기"에 올라와 있는 한재성선교사의 이야기를 링크합니다. 이 내용을 알아야 이후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읽었던 그 '애통하는자...'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숙연한 마음으로 그의 선교사이트를 다시 들어가봤다.
'열심이구나......참 열심이구나......'
생각하면서 한재성 선교사 가족 소개란을 들어가봤다.
단란해보이는 4명의 가족.
엉? 4명?
분명 아내되는 김진희 선교사님은 고인이 되셨을텐데.....?
<원정윤 선교사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하심으로 2006년 4월 1일 북부교회에서 선교강의차 왔던 지금의 남편인 한재성 선교사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결혼을 위해 기도할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번 내게 분명한 말씀으로 응답해주셨고, 2006년 6월 17일, 주님의 은혜로 그와 함께 결혼하게 되었다.....>
헉.
그렇구나, 결혼을 다시 하셨구나. 아무래도 선교지에 가서 사역을 하려면 내조자가 있어야 하겠지.
그렇지만......
그렇지만......
당황스러웠다.
그분은 분명 내게 "애통해하는 자" 중 한명이었고,
주님의 뜻을 따르다가 졸지에 홀아비가 되어버린 불쌍한 마흔살의 아저씨였는데.
다시 결혼을 하다니.....
마침 그 사이트에 선교사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는 공간이 있었다. 남은자 이야기.
들어가서 선교사님이 결혼할 시기의 글들을 훑어보았다.
그분의 심경의 변화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뭐, 긴 이야기들이야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직접 가서 보시길 바라고,
개인적으로 선교사님의 심정이 가장 잘 드러나고, 또 깊이 공감이 가는 글에 대한 링크를 남긴다.
.................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은 한재성 선교사가 그렇게 계속 울며 애통해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평소에 카자흐스탄이니 선교니 이런거에 관심도 없다가,
갑자기 아내가 죽고 울고 불고 하니까......
계속 평생토록 애통해하기만을 바랬을 것이다.
그것이 더 드라마틱하고, 더 감정적이고, 더 슬프기 때문이리라.
나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선교는 냉정한 현실이고, 사명은 변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네 삶에서도 몽상적인 자기도취의 장막을 거둬버리고 현실을 직시하였을 때
현실은 얼마나 냉정하였던가?
지금 나는 한재성 선교사를 존경한다. 예전에는 그를 동정하였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가 존경스럽다.
사람의 평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평생 울기만 했어도 한 몫은 단단히 잡았을 그 자리를 내팽개치고
그 좁은길을 따라 다시금 그 저주스러운 땅으로 걸어들어간 그가 존경스럽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근 20년 차이가 나는, 애 둘 딸린 홀애비에게로, 만난지 2개월만에 결혼을 하기로 순종한,
그리고 처녀의 몸으로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선교사의 길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원정윤 선교사도 존경스럽다.
나는 그러한 순종을 할 수 있는가...?
세속의 명예를 벗어버리고,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 길을 갈 수 있는가.
요즘엔 주님이 나를 참 많이도 엎드리게 하신다.
PS) 다시 선교사님의 사이트를 들어가서 잘 보니 카자흐스탄에서 다시 우즈벡키스탄으로 옮기셨구나.
역시 인간의 입맛에 맞는 드라마 보다는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를 추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가 느껴진다.
망할 놈의 술 문화
지난 금요일에는 우리 부서의 다른 팀의 워크샵이 있었다.
나보고 같이 가자는 말도 있었지만
(난 근본적으로 밤을 새워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 굉장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난 가지 않았다.
오늘 보니 내 동기녀석 눈에 안대를 하고 왔다.
안대로 가려지지 않은 곳을 보니 누군가에게 맞았는지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말이 좋아 워크샵이지 단체로 합숙을 해가면서 까지
술이 떡이 되도록 처먹고 개지랄을 떠는 것이 왜 그렇게 '적극 권장' 되고
그런 지랄을 해야하지만 '부서 단합'이 잘 되는 지는 이해할 수 없다만
어쨌거나 그렇게 굳게 믿어 의심치 않은 사람들과 그런 일들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을 죽기보다도 싫어하는 아무생각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신다면 곱게나 마실 일이지 싸움박질은 또 왜하는 건지....
예수와 그림쟁이
예수와 그림쟁이 라는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이토록이나 심금을 울리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위 블로그를 처음 들어가는 순간 그 사람의 모든 그림을 단숨이 봤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 예수님의 사랑을 이토록 잘 표현한 그림들이 또 있을까...
그리고 이 사람의 블로그를 다 읽으면서
이 사람이 대장암에 걸렸었고, 총 6차례에 걸친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의 메인화면에 보면 다들 알 수 있겠지만..
이사람은 블로그를 더이상 하지 않고, 떠난다고 써있다.
..........하늘나라로 갔을까...?
아마 아마 그랬겠지..?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서,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이리라...
이 사람의 그림이 나를 울린다.
이 사람의 사랑이 나를 울린다.
이 사람의 작별인사도 나를 울린다.
나도...나도 이 사람의 절반이나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2006년 11월 24일 현재, 이사람의 블로그에 가보니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괜한 오버를 했다고 생각하니 부끄럽네요....ㅜ.ㅡ

나는 썩 괜찮은 사람인가?
그것은 단 한가지 문제다.
"너희들이 믿는 신은, 자신을 믿는 사람만 구원을 주고 나머지는 다 지옥에 처넣어버린다는데,
나는 그 오만과 독선이 싫다!"
그 말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내가 믿고 싶은대로 믿어도 나를 구원해주는 신을 원한다."
결국, 그 뒤에는 여전히 자기 자신은 썩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숨어있는 것이다.
적당한 정의, 적당한 기준
많은 사람들이 이땅에 정의가 살아 숨쉬기 원하고, 그 정의로운 법칙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원한다.
당장 오늘 누군가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다면, 우리는 그 범인이 반드시 죄값을 치르길 바라지 않는가?
하지만 그 정의의 기준이란 사실 자기가 지키기에 충분한 정도의 기준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 저마다의 잣대를 가지고 세상 일을 판단하고 들이대면서,
누군가가 자신이 불의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우려한다.
자기가 지키고 싶을 만큼만 정의를 지키며, 자신이 그래도 썩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증을 끊임없이 받고 싶어한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제시하는 기준은 끝없이 높아서 인간의 노력으로는 절대 그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
완벽한 정의, 완벽한 선.
그 기준아래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 절대적으로 멸망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많은 믿지 않는 자들은 "그러는 건 독선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들은 다시 말해서
"나는 이만하면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살아오면서 몇가지 법을 어긴 것도 있고, 또 윤리 규범을 어긴 적도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긴 하지만
그정도야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
라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쉽게 말해..."적당히 죄짓고 적당히 착하게 살면 꼭 천국은 아니더라도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 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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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 연약한 인간들이 스스로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만들어낸 사상인지......
하나님에 대해 알아갈 수록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
공짜 핸드폰을 조심합시다.
얼마전에 이메일로 설문조사가 하나 왔습니다.
설문조사를 하면 핸드폰을 공짜로 준다고 그러더군요.

네...핸드폰을 바꿔야 할 생각도 하고는 있었고, 저리도 당당하게 공짜라고 하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뒤에 전화가 오더라고요.
일단 잽싸게 녹음부터 하고 통화를 했는데,
'각종 약정 및 의무 사용 없고, 핸드폰 기기 값이나 세금도 없다' 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알겠다고 하고 계속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계속 줄기차게 '어디 소속이냐, 다른 조건은 없냐.' 고 물어봐도
말을 계속 돌려가면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공짜라는 말에 일단 좀 혹하기도 하고, 제가 좀 귀가 얇아서...
알겠다고 하면서 신분증사본과 통장번호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개통담당이라는 사람이 다시 전화를 하더니 조건이 조금 바뀌는 겁니다. ㅡ.ㅡ;;
'기계값은 자기네가 내주겠다. 그렇지만 기계값을 대신 내주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그러니까 내 통장에서 기계값을 18개월로 빼가겠다.
대신 기계값만큼의 무료 통화권을 주겠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받자마자 14일 이내에 취소해도 된다.'
이러더라구요. 취소해도 된다고 하길래 일단 다시 패스..
뭐 그러면서 몇명한테 계속 전화가 오는데, 제가 그때마다 소속 회사를 물어봤거든요.
그때마다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데, 통화할때마다 녹음해놓고, 메모도 해놓고 해서 모은 정보를 모아보니 몇가지 사실이 드러나더군요..
결국 제가 알아낸 사실을 종합을 해보면,
전화기를 공짜로 준다.
사실 인 듯 합니다. 또한 추가 약정, 의무 사용기간 같은 건 없습니다.
전화기기 값을 받고 그 대신 기계값에 해당하는 무료 통화권을 준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끝까지 밝히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1. 무료 통화권의 요금
다른 곳에서 검색을 해보니 동일한 회사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회사의 영업방식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10초에 40원' 이라는 엄청난 요금의 무료통화권을 받았더군요. 결국 30만원짜리 무료 통화권을 받아도 실제로는 10만원 안팎의 통화일 뿐입니다.
2. 무료 통화 사용 서비스
실제 전화를 걸때 그 회사 서비스로 접속을 한다음에 걸고자 하는 상대방 전화번호를 입력을 한다음 별표를 누르는 형태로 서비스가 제공이 되는데요.
우선, 개인적인 단축번호 지정이 안된다는 점이 있고, 두번째로는 통화량이 많은 저녁시간대에는 거의 연결이 되지 않는 다는 불만들이 많았습니다.
즉, 서버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이 안되어 있는 것이죠.
3. 회사의 신뢰성
몇몇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회사들 중 일부는 회사가 망했다고 해서 중간에 받은 무료 통화권이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있더군요. 그리고 그런 서비스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이름의 회사가 새로 생겨서 또 사람들의 불만을 일으키고....
계속 그런식이 많더군요. 또한 몇십만원짜리 무료 통화권을 받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만료기간이 한달이 되어버리던가,
한번 가입을 하면 탈퇴하려면 직접 본사에 방문해야 한다던가... 그런 회사들이 순차적으로 생기고 사라지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취소를 한다고 했는데 전화기가 벌써 도착을 해버렸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내일 택배로 보내버리려고 합니다.
택배비만 날리게 생겼네요...그래도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는 사실을 매우 싼 수업료를 내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이 귀가 얇은 사람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충고
1.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욕심에 눈이 멀면 항상 헛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2. 조금이라도 의심가는 점이 있으면 최대한 시간을 끌으세요. 시간을 끌 수록 상대방의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고, 나 자신도 침착하게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깁니다.
3. 항상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놓고 대비를 하세요.
4. 다시 한번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좋은 글 - 부동산 거품과 경기흐름
어차피 나같은 젊은 봉급쟁이들은 현재의 부동산 경기가 중요한 건 아니고,
일단 돈을 모으면서 감각을 키우는 데에 주력할 것.
돈을 모으기 위해선 검소하게 살 것.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해선 돈을 많이 벌 것.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선 능력을 갖출것.....ㅡ.ㅡ;;;;
꿀벌에게는 토사물이 나에겐 로얄 젤리
어느 기업이 내 블로그를 보고 상업적 가치가 전혀 없는 쓰레기 블로그라 여겨도,
어느 신문사가 내 블로그를 보고 미디어의 가치가 전혀 없는 쓰레기 블로그라 여겨도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내가 쓰레기라 여기지 않으면 그건 쓰레기가 아닌 것을...
나한테 소중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을 것일 수 있다.
당연한거 아닌가?
꿀벌의 토사물이 나에겐 로얄 젤리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돌맹이가 나에겐 다이아몬드
다른 사람의 버린 돌이 나에게는 건물의 머릿돌
그럼에도 자꾸 쓰레기라 그러면...?
언제부터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을 썼나?
덧.)
자신의 콘텐츠가 그렇게 쓰레기 취급받는게 분하다면 콘텐츠의 질로 승부를 걸면 되는 것이다.
다른사람에겐 별로 가치가 없는 콘텐츠라면, 또한 다른 사람의 가치평가에 연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 들일 수도,
다른 사람이 깜짝 놀랄만큼 멋진 가치를 보여줄 수도,
다른 사람의 평가에 무덤덤할 수도 없는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의 말 한두마디에 휩쓸려 다닐 뿐이다.
댓가를 지불하는 삶
(어릴적에 읽은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라는 SF소설에 나오는데 원 출처는 잘 모르겠습니다. 외국 속담인가???)
항상 모든 일에는 댓가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요즘 인터넷을 보면 댓가 없이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보입니다.
1. 제가 자주 가는 사이트 중 qaos.com란 곳이 있습니다.
정말 주옥같은 팁, 강좌, 정보가 있는 곳이죠. 그 곳의 운영자이신 도아님도 제가 참 존경하는 분이고요.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의 글을 불펌하고, 편집해서 자기가 쓴 것처럼 만들고, 일부는 레포트 월드에 판매까지 하는 등,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결국엔 유료회원제로 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비는 일년에 만원입니다만 아직 정식 서비스를 런칭하지 않아서(한 3년째 계속 사이트 개편을 하신다고 하십니다만...^^) 지금은 그냥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비를 가지고 말이 많은 줄로 압니다.
"어차피 다른 곳의 지식들을 모아서 짜집기 한건데 그걸 돈받고 보여준다니 너무한것 아니냐?"
라고요...
하지만, 그런식이라면 우리가 매일 먹는 밥도
"어차피 땅파서 심으면 쌀이 열리는데 그걸 돈받고 팔다니 너무한것 아니냐?"
라고 따져야 하지 않을 까요?
질문에 답변을 다는 것, 새로운 팁을 정리해서 쓰는것, 강좌를 올리는 것.....
이런 "정보를 가공해서 전달하는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실겁니다.
혹시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아닌지,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수준인지 검증하고 확인하고 테스트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좀 씁슬합니다.
qaos.com의 유료회원들이 지불하는 년간 만원의 회비를 놓고, 어떤 사람은 "이용요금" 이라고 생각하시고
다른 어떤 사람은 "기부금"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뭐, 두가지 다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이 유료회원제가 왜 생겨나게 됐는지 아시는 분은 "기부금"이라고 생각하실 것이고
모르시는분(그 사이트 공지사항중 옛날 공지를 찾아보시면 알게 되시겠지만)은 "이용요금"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용요금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어떤 "서비스"(이를 테면 답변같은)에 더 민감하실지도 모르는데요.
여기는 자본주의 세계고, 어느 서비스가 불만족 스러우면 이용하지 않으시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2. 인터넷 상에서 질문을 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모 사이트(컴퓨터 관련은 아닙니다.)에서 질문/답변 게시판에서 답변을 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참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은채, 최소한의 검색도 하지 않은채
너무나 당당하게 질문을 올립니다. 벌써 똑같은 질문이 몇개인지...
답변이 늦으면 욕을 합니다. 왜 답변이 늦냐. 사이트 관리 똑바로 해라.
추가적인 정보를 요구하면 욕을 합니다. 그것도 모르냐. 때려쳐라.
그러면서 질문자가 원하는 스타일(친절하고 자상한 문체로)로 답변해주면 좋아라 합니다.
내용의 정확하고 정확하지 않음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이 보입니다.
그 사람들은 질문을 왜 하는 걸까요?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지 않았을 까요?
그럼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정확한 답이지 친절한 답은 아니지 않을 까요?
인터넷상에서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찾고자 돌아다닙니다.
그에 반해 사람들에게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하지만 그 답변을 하는 사람들이 그 답변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 답변하나하나가 그 사람들에게는 그리 쉬운 것이 안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답변을 받기 원하신다면
최대한 자세하고 정확한 질문을 올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즉 좋은 답변을 얻기 위한 댓가)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 전에 검색은 기본이지요.
3. 프로그램, 음악, MP3
아....물론 저도 아직 OS나 오피스 같은 거 불법으로 쓰고 있습니다...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또 좋은 프로그램들은 돈주고 사기도 합니다. 조금씩 그런 습관을 고쳐나가려고 합니다.
어제는 음악 CD도 샀습니다. 그런데 CD를 사기위해 참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어느새 음반 가게도 거의 사라졌더라구요....
제가 아는 모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MP3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한파일당 500원의 요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거품을 물고 덤벼들더군요. 무슨 교회가 장사꾼이냐, 너무한거 아니냐.....
그게 비싸다고 생각하면 안들으면 돼는 것 아닌가요?
그 수익금을 가지고 선교사 후원금을 댄다고 얘기해서 겨우 진정을 시켰습니다.
아니 꼭 그렇게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그 돈을 어디다 써야 하는지 말해야 하나요?
500원이 비싼가요? 싸이월드 홈페이지 배경음악도 700원입니다.
어차피 다운받아서 P2P에 풀 사람들이 난리치기는...
정말 "헌금은 제대로 내세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솓구쳤었죠.
그 돈을 선교 후원금으로 안쓰면 어떻습니까?
MP3다운하면서 발생하는 트래픽 비용, 관리자 새로 뽑고.....신경쓸게 한두개입니까?
저는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가 돌아오기 마련이라고 믿습니다.
저 역시 제 안에 남아있는 거지 근성을 끊기 위해 노력중이고요....^^;
여담 : 제일 앞에 언급한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은 상당히 유명한 SF소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중 한명인 이영도님(드래곤 라자로 유명)이 후속작 퓨쳐워커를 연재할 당시(90년대로 기억합니다.) PC통신 게시판에 쓰신 글을 잠시 인용해보겠습니다.
뉴로맨서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느낍니다. 역시 컴퓨터는 끔찍하게 발달하고 있다는 것을. 뉴로맨서에서 주인공은 겨우 3 메가 램 때문에 연인에게 배신당하지요. 하지만 지금은 PC에도 램은 64 메가. 무섭습니다. 아,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에도 비슷한 예가 나옵니다. 달 세계 전체를 통괄하는 슈퍼 컴퓨터 마이크가 가진 여유 기억분이 고작 100 메가였지요. 하지만 지금은 PC의 하드도 기가바이트 시대. 아무래도 우리 사는 시대가 SF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네....그당시 램은 무서운 64메가였지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거위가 먹는 사료를 줘야한다.
황금을 준다고 황금을 낳는 것은 아니다.
거위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물고기이지 황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거위에게 황금만 계속 준다면 거위는 굶어죽고, 황금알도 끊어질 것이다.
자기가 황금을 원한다고 남도 황금을 원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영웅을 맞이할 능력
관객들이 들어오고, 막이오르고, 배우들은 노래를 시작했죠.
하지만 중간에 배우들의 노래가 조금씩 꼬이기 시작한 겁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 몇몇 눈치빠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지만,
또 그런대로 공연이 흘러가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려려니 여기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공연 도중 연출자가 무대위로 뛰어올라옵니다.
"뭐가 문제야? 무슨 일이야?"
그리곤 배우들의 노래에 대해 질책을 하기 시작합니다.
공연 도중이었는데 말이죠.
결국 관객들은 무대를 떠나고, 공연은 실패하고 맙니다.
제가 이번 황우석 교수의 사건을 바라본 느낌은 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분노한 건, 황우석 교수의 윤리문제도, 연구성과의 진위도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야 말기 때문이지요.)
제가 분노한 것은 "과연 지금, 반드시 지금 그 사실을 짚어냈어야 했는가?" 하는 분노였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같은 극단에 소속된 사람들"이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지요.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해서는 충고할 수도, 질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죽이려는 목적이 아닌, 살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더욱더 그 때를 선택함에 있어 조심스러워야 할 것입니다.
잘못을 덮어주자는 것 아닙니다. 왜 하필 지금이냐는 거지요.
지금 이렇게 들쑤셔 놓으면 앞으로 황우석 교수가 연구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지금 들쑤시지 않으면 조만간에 엄청난 대형사고라도 발생하는 것이었을 까요?
뭐, 이젠 다 지난 이야기고, 우리는 모두 미친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젠 내릴 수도 없고 그냥 달려가는 거지요. 이젠 모두의 통제력에서 벗어나 버린 것 같습니다.
정말 도아님 말씀대로 이제는 침묵하고 바라만 봐야할 때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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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쩔수 없이 논문 재검증을 해야 하겠지만,
전 이 재검증에 대한 요구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간만에 나온 세계적인 과학자를 조금이라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런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100미터 달리기에서는 10초의 벽을 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68년 전미 육상선수권대회에서 드디어 깨졌다더군요.
그런데 그때, '뭔가 수상하다. 다시 뛰어봐라' 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지 않나요?
그래서, 세계 최초의 기록, '인간은 불가능하다' 라는 잘못된 명제를 깨버린 그 선수로 하여금
모든 기자들이 다 모인 상황에서 다시 뛰라고 한다는 거, 혹시 약물복용했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사기치지 않는지 조사한다는거.
솔직히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 기록의 검증은, 다른 선수들에 의해, 또는 다음대회때 그 선수의 기록을 통해 검증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뭐 다 지난 이야기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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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의 대응도 점점 수상해 지기 시작하네요.
조금씩 황우석박사에게도 의심이 듭니다.
여러가지 비공식적인 이야기에도 수상한 내용들이 들어있고요
(개인적인 인맥을 통한, 말그대로 '카더라'통신입니다만)
어쨌든 이번에는 우리 모두 패배했습니다.
이 사태가 어떠한 형태로든 결말은 나겠지만, 어떤 상황이던지 승자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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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맞이할 능력이 아직은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영웅을 죽이지도 않으며, 또한 영웅의 모든 것을 절대신성시 하지도 않으며
영웅은 영웅답게 영웅적인 일을 하게끔 해주며,
우리는 영웅을 자랑스러워 하는 그런 문화가 아쉽습니다.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겠죠? 다들 화이팅입니다.
이걸로 제 블로그에서 황우석 교수에 관한 이야기는 끝~!!
이제 국내 과학계까지 나섰구만.
아무곳에서도 논문에 대한 진위는 의심하지 않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지랄이야.
처음에 문제된게 뭐야?
연구원 난자 썼다는 거가 문제아니야?
매매난자를 썼다는 거가 문제아니야?
그리고 위에 두개는 이미 인정하고 사과하고 앞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잖아?
근데 뭘 또 재검증을 하고 지랄이야?
하여간 아주 작정을 했네 작정을 했어.
황교수가 언론플레이 하는거? 맞는 얘기지.
그런데 이 싸움이 무슨 싸움이야?
처음부터 언론플레이하는 싸움 아니었나?
언론플레이하는 싸움에서 언론플레이하는게 뭐가 어때서?
처음부터 연구하는 사람 건드린게 누군데 이제와서 난리야?
존나 만만하게 봤던 사람이 막상 부딪혀보니까 너무 고수였나?
이제 그만좀 하면 안돼나? 진짜 짜증나서 못봐주겠네.
이 모든 개지랄들이 끝나고 나면 우리에겐 뭐가 남지?
쓸만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하나 날아가고
쓸만한 과학자가 좃돼고
시간은 시간대로 다 까먹고
우리나라의 모든 명예가 다 땅에 떨어졌잖아.
이제 앞으로 우리나라 과학도들이 세계최초의 논문하나 내면 꼬라지 볼만 하겠네.
1차 시사교양프로그램의 검증
2차 국내 과학진의 검증
3차 싸이언스, 네이쳐 지의 검증
4차 민노당, 시민단체, 프레시안의 검증
5차 대가리 먹물 존나게 처바른 새끼들의 검증
이게 뭐하는 개지랄들이야?
이제 뭘 원하지? 이제 우리가 뭘 할수 있지?
우리가 할 수 있는말....딱 하나 있네.
존나 오래전부터 존나 많이 듣던말.
"역시 우리민족은 안돼..."
진짜....난 황교수가 아직까지 우리나라 안떠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존나 존경한다.
각종 의혹을 쏟아내며 윤리적인 척하는 영국이나 미국애들,
황교수가 그쪽으로 귀화해도 그렇게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댈것 같애?
"윤리의 절대적 기준"을 들이대면 그 누구도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지.
다들 미쳤어 좀 가만좀 있어라.
언론이 치는 북에 그만좀 놀아났으면 좋겠다.
씨바..하여튼 이놈의 용서할줄 모르는 문화는 어서빨리 사라져야지...
결국 황교수의 잘못은 연구원 난자를 사용했다는 것 뿐.
제8조 `의사는 스스로 동의서를 승인 또는 거부할 능력이 없거나 강제된 상황에서 동의했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특별한 주의(Special attention)를 기울여야한다`
이거 하나밖에 없구만.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황우석 박사는 사과를 했고, 앞으로 이런일이 없도록 조져대면 되겠네.
난자를 매매한 것과, 난자를 실험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아직까지 논의중이고...
과연 PD수첩은 뭘 원한것이었을까?
이 사건이 과연 이토록 한달이 넘게 시끄러워야 했었을 문제였는지 모르겠네.
PD수첩의 강압적인 방송에 관한 에피소드는 이거 말고 나도 들은게 좀 있다.
어차피 "보여줄 수 있는 권리"는 그들에게만 있거든
